2012.06.08 16:43

묵시록적 우울증. 멜랑콜리아.




1.

보고나면 찝찝하지만, 자꾸 보게 되는 영화가 있는데,

바로 이 영화의 감독인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가 그렇다.


뭐 그렇다고 이 감독의 영화를 모두 다 본 건 아니다.

기껏해야 "킹덤(1994)", "킹덤(1997)", "어둠 속의 댄서(2000)"과 "도그빌(2003)" 정도?

"어둠 속의 댄서"는 학부생 때 학교 문화관에서 틀어 주는 영화 감상회에서 봤는데, 심지어 영화 보다가 잠들어 버린 몇 안 되는 영화 중에 하나이다.



"안티크라이스트(2011)"도 마찬가지라고 하는데,

그의 영화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관객을 상당히 불편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일단, 핸드헬드 기법으로 영화를 찍는 스타일도 그렇고, 

뭐 "킹덤" 시리즈야 정신병원에서 이뤄지는 말도 안 되는 기괴스러운 얘기들을 영화로 만들었고...


그리고 그의 많은 영화는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고,

영화에서 그 여성 주인공을 엄청나게 괴롭힌다.

그 괴롭힌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성적으로 주인공을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의 괴로움을 주고, 결론 역시 파국으로 끝난다는 것.


특히 니콜 키드먼이 주연을 맡으면서 많은 화제를 뿌렸던 "도그빌"을 보고 나선 정말 요샛말로 멘붕 상태에 도달하는 지경에...

관심 있는 분은 2004년, 24살 꼬꼬마 시절에 적었던 도그빌의 짧은 감상기를 읽어 보아도..



"도그빌" 감상기 보기




2.

서론이 길었다.

아무튼 작년 하반기에 미국에서 이 영화가 개봉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한국에는 언제 개봉하나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가

심지어 이미 iTunes Store에 이 영화가 나와 있는 것을 확인했고, 

iTunes에서 다운 받아 봐야 하나.. 진정 한국에서는 개봉하지 않는 걸까 전전긍긍하다가 올해 5월 초에야 개봉 예정 소식을 확인했다.

이런 영화는 오래 하지 않기 때문에 개봉 첫주에 봐야 하는데, 개봉하는 주간에 미국 출장을 가는 바람에 못 볼까봐 걱정도 했는데, 다행히 한국에 돌아 오고 나서도 상영 중이라 극장에서 관람을 할 수 있었다. 'ㅁ'



3.

예고편으로 공개된 영상에서는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슬로우 모션의 시퀀스를 보여 주어 그 기대감을 증폭시켰는데,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예고편에서의 그 시퀀스를 바로 목격할 수 있었다.



오프닝은 약 8분 간의 슬로우 모션 시퀀스를 담고 있는데, 

장면 하나하나가 매우 아름답고, 시각적인 쾌감을 주고 있다. 

동시에 이 시퀀스 동안 흘러나오고 있는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서곡은 

오프닝의 아름다움을 청각적으로도 더해주고 있는데, 

최근에 경험한 영화 중 가장 아름다운 오프닝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사실 오프닝 시퀀스에서 이 영화의 모든 내용을 압축적으로 보여 줬기 때문에, 

여기까지만 봤으면 극장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집에 가도 될 듯 싶다. (응?)



4. 

이 영화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영화의 제목이 나오기 전까지의 오프닝 시퀀스, 그리고 1부 저스틴, 2부 클레어.


1부와 2부는 동일한 등장인물들의 동일한 배경에서의 사건을 다루지만, 서로 다른 영화라고 해도 될 정도로 다루고 있는 대상이나 소재가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영화의 제목인 "멜랑콜리아" , 즉 우울증을 영화 전체의 소재로 다루고 있다.


1, 2부의 제목인 저스틴과 클레어는 영화의 두 주인공으로 서로 자매지간이며 

1부에서는 우울증을 가진 주인공 저스틴을 초점으로 그녀의 결혼식에 대한 사건을 다뤘다면, 

2부에서는 존재 자체가 "멜랑콜리아"인, "멜랑콜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행성이 지구를 덮쳐 오는 가운데, 클레어를 초점으로 하여 묵시록적인 시나리오를 전개한다.


1부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저스틴이 겪는 우울증 때문에 

겉으로는 화려하고 성대한, 매우 행복해 보이는 결혼식은 결국 엉망이 되었고 

-- 사실 결론적으로는 엉망이 되어 버렸지만, 인내심 많은 하객들의 도움 (?) 덕분에 

결혼식 자체는 성공적으로 개최된 것처럼 보인다 -- 저스틴의 우울증세는 더욱 심각해진다.

그러나 그녀의 주변 인물들은 그녀의 편이 되어 주지 못하고 

(아무리 우울증 환자라고 해도 그 정도까지 참아주는 것만해도 성인군자로 보임... -_-) 

유일한 그녀의 도움이 되어 준 이는 그녀의 언니 클레어이다. 

(이 정도면 거의 성녀임.... -ㅁ- 하지만 그녀 역시 '가끔은' 그녀의 동생이 미웠다.)


1부의 마지막에서 저스틴은 전갈 자리를 구성하고 있는 별 하나(멜랑콜리아)가 사라졌음을 알게 되었고,

2부에서는 이제 이 별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게 된다.


1부에서의 두 인물 간의 관계는 2부에서는 완전히 반전된다.

우울증 증상이 너무 심해져서 스스로는 걸을 힘조차 낼 수 없던 저스틴이 클레어의 집으로 들어 오게 되고, 

하나의 별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는 사실에, 그 별이 지구와 충돌해서 모두가 죽게 될 까봐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녀의 동생 저스틴은 

'지구는 사악하고, 지구의 생물둘도 사악하다. 우리는 저 별 때문에 죽게 될 것이다. 나는 느낄 수 있다'라고 하며

 이러한 사실에 너무나 태연해 한다. 

그녀는 심지어 멜랑콜리아가 지구로 다가올 수록 혈색도 좋아지고, 건강해 지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우울병 환자인 그녀가 오히려 정상이 된 것처럼 보이고, 반대로 그녀의 언니가 환자가 아닌가 싶을 정도의 행동을 보인다. 

두 개의 달(?)이 뜨던 밤에 오히려 그녀는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별 "멜랑콜리아"에 황홀해 하고, 

최후의 순간에도 어느 인물들 보다도 가장 평온함을 보인다. (순간 보이는 클레어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두 인물은 서로 반대되면서도 각각 1부와 2부에서 비슷한 모습을 서로 바꾸어 가면서 보여준다.

(스포일러)


다만, 저스틴의 우울함은 내재적인 원인에 외부적인 환경이 작용하여 발생한 것인 반면,

클레어의 우울함은 엄밀히 말하면 '우울함'보다는 '불안감' 내지는 '두려움'에 가까우며, 

내재적인 면보다는 외부 환경 때문에 발생하게 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데에서 그 차이가 있다.

때문에 두 경우를 단순히 "멜랑콜리아"라는 하나의 공통분모로 생각하는 건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5.

이 영화에서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는 또 하나의 배역, 클레어의 남편 존은, 그냥 보통의 남자라고 할 수 있다.

(완전 갑부라서 그냥 보통의 남자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


처제가 행복해하기를 바라면서 그녀를 위해 어마어마하게 성대한 결혼식을 개최해주지만 (이미 평범하지 않은 건가...) 

저스틴의 돌발행동들과 그녀의 어머니의 언행 때문에 하객들에게 피해가 돌아가게 되는 것에 분노하고 하는, 

나라고 해도 충분히 화내고 열내고 말 것 같은 그냥 지극히 일반적인 남자의 성격을 지닌 남자이다.

또, 2부에서 불안해 하는 아내를 안심시키고자 많은 노력을 하면서, 

자꾸 불안해 하는 그녀의 행동을 대로는 다그치기도 하는, 그리고 자신의 아이에게 충실한 반듯한 남자이다.


그러나 아니러니컬하게도, 이 영화에서 가장 일반적이고 정상적으로 보이는 그는 

자신의 믿음이 틀렸음을 깨닫고나서 그 두려움과 불안함에 가장 크게 동요해 버리는 인물이 되어 버린다.



6.

건강한 사람이 보는 입장에서 저스틴의 우울증은 결코 "정상"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의 행동과 모습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짜증나고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 입장이 딱 이랬음.)

그러나 "멜랑콜리아"가 지구로 다가오는 순간의 모습은 이미 정상적인 이 세상은 아니다. 

존재 자체가 "우울"인 "멜랑콜리아"가 영향을 주고 있는 지구는 이미 "우울함"으로 뒤덮힌 지구가 아닐까.

때문에 비정상으로 보이던 이때에 그녀는 오히려 정상으로 보이고, 반대로 그 우울함의 존재를 낯설어 하는 클레어에게는 "우울함"의 증세가 나타난 게 아닐까.

분명히 영화에서는 physical한 별의 모습으로 "멜랑콜리아"를 그렸지만,

"우울증"을 형상화, 비유화해서 영화로 표현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7. 

영화를 보고 나온 후에 극장에서 2분 정도 놓친 오프닝 시퀀스를 다시 봤는데,

어찌 보면 이 모든 사건이 저스틴이게서 시작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병 안에 들어 있는 콩의 갯수를 정확히 알 수 있었던 것을 보면 비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고,

오프닝 시퀀스에서 그녀의 모습을 초인적인 형상으로 그리고 있는 부분이 있기도 하고,

'멜랑콜리아가 지구와 충돌할꺼야'라는 예언적인 그녀의 대사나, 

멜랑콜리아에 황홀해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결국 묵시록적인 사건의 발단은 저스틴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8.

라스 폰 트리의 영화를 본 중에서 가장 편안한 맘으로 영화를 봤다.

이 영화 역시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는 여전히 군데군데 위치해 있었지만, 

그의 다른 영화에 비하면 이건 전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단순히 "재미"적 측면에서도 이 작품을 가장 재미있게 보았다.



9.

키어스틴 던스트의 연기를 "최고"라고 할 수 있을 정도라고 느끼지는 못 했으나,

이 배역은 키어스틴 던스트가 아닌 다른 사람이 맡았을 때의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그녀에게 너무 잘 맞고 잘 어울리는 역할이었다.

물론 그녀의 연기가 이 배역에 자연스럽게 묻어 나와 이런 결과를 보였겠지만..





멜랑콜리아 (2012)

Melancholia 
7.5
감독
라스 폰 트리에
출연
커스틴 던스트, 샬롯 갱스부르, 키퍼 서덜랜드, 샬롯 램플링, 존 허트
정보
미스터리, 판타지 | 덴마크, 스웨덴,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 135 분 | 2012-05-17


블로그 글이 맘에 드시면 추천이나 댓글 부탁드려요!
Trackback 0 Comment 0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