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01 19:45

자그만치 "26년"







0.

영화가 제작 중에 엎어졌다는 소문을 들었다.

투자자들이 제작 중간에 발을 빼는 바람에 더 이상 영화를 제작할 수 없었다는..

이후 가수 이승환이 주가 되어 이 영화를 제작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났고, 국민들을 대상으로 제작두레를 공모하여 그 비용으로 영화가 제작되게 되었다.

때로는 2만원, 때로는 3만원, 때로는 29만원(응?)을 지원하여, 만들어진 이 영화.

나는 그 시기를 놓쳐서 제작두레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었고, 개봉 후 바로 극장에서 볼 생각으로 있었다.

그러던 중 제작두레에 참여했던 후배가 사정으로 시사회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고, 내가 대신 시사회장을 찾게 되었다.






시사회장을 찾은 영화사 청어람 대표 및 배우들




1.

만화가 강풀의 원작을 읽었던 사람들에게는 친숙한 시나리오로,

5.18 광주 민주화 항쟁 시기에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이들의 가족들은 어떤 한 자본가에 의해 한 자리에 모이게 되고, 이들은 한 가지의 목적(그 사람을 암살)을 위해 움직이게 된다.

이들을 한 자리에 모든 사람은 5.18 당시 계엄군의 일원. 

자신이 죽인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과 군 체계 하에서 명령 하에 움직일 수 밖에 없었던 그도 역시 5.18의 한 사람의 피해자.






2.

원작에서 각 인물의 뒷 이야기를 친절히 설명해 주었던 반면,

영화에서는 초반에 등장하는 거친 선의 애니메이션을 통해 이들의 사연을 간략하게 그리고 있다.

각 주인공들이 겪게 된 가족의 상실. 그리고 그들의 슬픔과 분노.

이 장면들은 실사로 표현하기에는 다소 잔인할 수 있는 장면들을 그리고 있는데, 매우 강렬한 인상을 줌과 동시에 등장인물들의 아픔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특히, 이 시퀀스에서부터 눈물을 참고 볼 수 밖에 없었는데, 주인공들이 겪은 상실과 슬픔을 전달하기에는 매우 좋은 효과였던 것 같다.

다만 미진이 개조된 공기총을 다루는 실사 장면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전환될 때에 다소 이질감이 있으며, 연출이 부드럽게 이어지지 않아 애니메이션 장면 초반에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점은 조금 아쉬움으로 남는다.

(공기총 개조 씬에서의 미장센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음..)




3.

계엄군 출신의 김갑세를 중심으로 각각의 사연이 있는 이들이 모이게 되면서 

그 사람에 대한 암살 시도를 준비하는 과정과 그 암살시도가 영화의 전반적인 스토리라인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등장 인물이 함께 등장하며 각각의 인물의 중요도를 한 곳에 집중시킨다기보다는 각각의 인물에 대해 모두 묘사하면서 이들 간의 밝혀지지 않은 관계를 그리는 내용 전개는 강풀 만화의 특징으로, 남인 것 같은 등장인물들이 알고 보면 모두 얽혀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 그리고 사건이 고조됨과 함께 각 등장인물들의 공통적인 관심사(만화의 핵심 사건)으로 모아지게 되는 것이 강풀 만화의 큰 재미를 주는 점인데...

영화에서는 이런 전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단지 미진과 진배의 과거를 연결시키는 시퀀스가 한 컷 등장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대신 영화에서는 각각 등장인물의 사연을 중심으로 영화를 이끌어가고 있는데,

초반의 애니메이션, 그리고 미진과 진배의 가족사를 묘사하는 장면들이 이를 서술하고 있는 부분이다.

원작에 비해 캐릭터가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미진, 진배에 더 큰 비중을 주고 있으며, 나머지 인물들에 대한 배경은 깊이 다루고 있지 않고 있어서, 이들의 공통적인 목표(그 사람의 암살)에 대한 당위성을 명확하게 관객들에게 전달하기는 역부족이지 않았나 싶다.



4. 

영화에서는 두 번의 암살시도가 그려진다.

예고편을 통해서 볼 수 있었던 미진의 가두 암살시도, 그리고 이후의 가택 공격 시도.

미진의 가두 암살시도는 영화의 전후반부를 구분짓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프닝 시퀀스, 공기총 개조 씬에 이어지는 장면이다.


첫번째 암살시도 씬이 이 영화에서 중요한 하나의 포인트기는 하지만, 이렇게 영화의 한 중간에 들어가는 장면을 가지고 이러한 편집 방법을 사용한 것은 조금 애매한데.... 오히려 첫번째 암살시도 씬까지 괄호로 앞뒤를 막아 버린 기분이라 이후 스토리에서는 영화가 다소 단절된 느낌이 든다. 

잘된 스릴러나 첩보물에서는 다소 식상할지언정, 최고조 장면을 오프닝에 넣음으로 제대로 후반부의 주요사건을 더 강하게 부각시키는 효과를 주고 있으나(인셉션이나 미션임파서블 3의 오프닝이 생각난다..), 여기서는 중반부 이후에 살짝 김이 빠지는 기분이 든달까나..?


특히 후반부에는 등장인물의 배치 구도도 바뀌고, 경찰의 비중이 갑자기 높아지면서 영화 전체의 밸러스가 다소 비끗한 느낌?





5. 

가장 볼만한 액션 시퀀스는 후반에 가택을 공격하는 장면으로, 

특히 미진의 사격 장면은 조마조마하면서도 통쾌한 액션을 선사해 주고 있다.





6.

영화 전개에서의 아쉬움은 다소 남지만, 전반적으로는 잘 나온 작품인 것 같다.

제한된 제작 환경에서 이 정도의 퀄리티가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던 것 같다.

영화에 등장했던 한혜진, 진구, 이경영, 조덕제, 장광 등의 연기가 영화의 만족도를 높히는 역할을 했다.


진구는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배우인데, "비열한 거리", "달콤한 인생" 등의 영화를 통해 그의 연기에 많은 감탄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다만 "26년"을 포함한 이 세 영화에서 모두 건달 역할을 하고 있는데, "26년"에서 진구가 맡은 캐릭터 곽진배는 다른 작품들에서 본 진구 연기의 기시감을 느낀다는 평도 있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역할만큼은 진구라는 배우에게 적역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설마설마했던 임슬옹의 연기는....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달콤한 인생"에서의 에릭이 더 괜찮았다고 생각이 됨....)





7.

잊을 수 없는 대사.

그 사람 "요즘 젊은 친구들이 나한테 감정이 별로 안 좋은가봐.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고 말야."

(어디선가 그 사람이 정말로 했던 말로 기억하는데... 이 대사를 넣은 시나리오 작가에게 박수를...)





8.

엔딩 크레딧에서의 이승환의 "꽃"

이미 10년 전에 그의 앨범 His Ballad II에서 들었던 노래지만, 이렇게 이런 자리에서 다시 듣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먼 옛날, 눈물로 지새던 밤 

그대 기억도 못할 약속 가슴에 남아

혹시 시간이 흘러도 우리 살아 있는 동안 

다신 볼 수 없다 해도 그대의 태양이 

다 지고 없을 때 말없이 찾아가 

꽃이 되겠네 









9.

영화를 보고 나니 착찹했다.

아직 우리가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

그리고 아직도 바뀌어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

결코 기분 좋을 수 없는.

그러나 결코 잊을 수 없는.

이 상처를 안고 가야 한다는 것이.





덧. 한혜진은 파란 츄리닝만 입고 나와도 왜 이리 이쁠까.





Image quoted from dvdprime.com 




원작 만화 보기: http://cartoon.media.daum.net/webtoon/view/kangfull26





26년 (2012)

7.8
감독
조근현
출연
진구, 한혜진, 임슬옹, 배수빈, 이경영
정보
드라마 | 한국 | 135 분 | 2012-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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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0 Comment 2
  1. 2012.12.17 00:36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gp.pe.kr BlogIcon 지피군 2012.12.24 13:15 신고 address edit & del

      인상깊은 영화였습니다.
      제가 지금 초대장이 없어서 힘들겠네요.. ^^;;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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