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09 20:47

제로 다크 써티: 현실적인, 관조적인 전쟁 영화

 

 

* 이 글에는 "제로 다크 써티"와 "허트 로커"에 대한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으므로, 영화의 내용을 미리 알기 원지 않는 분은 읽지 않으시길 권장합니다.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전쟁 영화는 여느 헐리우드 전쟁영화와는 다르다.

 

영웅이 등장하지만, 그녀의 영화는 팍스 아메리카를 외치는 영웅주의는 철저히 배격하고, 주인공의 승리에 대한 환호도, 만족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스탠리 큐브릭의 "풀 메탈 쟈켓 (Full Metal Jacket, 1987)"이나 프란시스 포콜라의 "지옥의 묵시록 (Apocalypse Now, 1979)"과 같이 전쟁의 잔인성 혹은 전쟁에 의해 짓밟히는 인권을 고발한다거나 반전의 메시지를 담고자 하지도 않는다.

 

그녀의 전쟁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자의로 혹은 타의로 전쟁의 현장에 중독(addicted)되거나 혹은 망상(obsessed)에 사로잡힌[각주:1] 인물로 등장하여, 전쟁의 의미도, 전쟁의 목적도 잊은 채 전장에 남아 전쟁을 계속하는 인물일 뿐이다.

또한 그녀는 참혹한 전쟁의 장면에서 우월감도, 연민의 정도 배제한, 관찰자로서의 역할로 카메라를 사용한다.

카메라는 영화 속의 사건을 담을 뿐이지, 어떠한 감정도 담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2009년 미국에서 개봉한 그녀의 영화 "허트 로커 (The Hurt Locker, 2008)"는 이라크전 당시에 활약했던 어떤 폭약 제거반 군인의 모습을 그리며, 여느 전쟁영화보다도 무미건조하지만 또 여느 전쟁영화보다도 사실적이면서 긴장감있는 장면을 연출하였다.

이 작품은 2010년 제8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등을 휩쓸어 그녀의 전 남편 제임스 카메론이 감독했던 "아바타(Avatar, 2009)"를 무참히 짓밟기도 했다.

 

 

 

 

2012년에 개봉한 이 작품은 한국에는 다소 늦게 소개되었지만, 오사마 빈 라덴을 추적하고, 암살에 성공하는 과정을 묘사한 영화로, 그녀의 이전작의 연장선 상에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알 카에다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심복들의 뒤를 쫒는 CIA 현장 요원들의 모습을, 그리고 그 중에서도 한 여성 요원 마야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녀는 단지 빈 라덴을 잡기 위해 파키스탄 CIA 지부의 현장으로 왔으며, 출세나 개인적인 욕망은 전무. 그녀의 존재의 유일한 목적이 빈 라덴의 추적이었다.

영화 속의 대사에 의하면, 그녀는 남자친구도, 그리고 다른 친구도 없고, 어느 남자와 즐길 생각도 없으며, 12년 동안 빈 라덴을 쫒는 것 이외에는 전혀 다른 임무도 수행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생활도 없으며, 아니 엄밀히 말하면 영화는 그녀의 사생활은 전혀 다루지 않고 있는데, 그나마 영화에서 다뤄진 그녀의 유일한 사생활이었던 그녀의 선배와의 저녁식사는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이뤄질 수 없게 되었다.

그녀 역시 "허트 로커"에서 전쟁터의 삶에 obsessed된 주인공과 같이 다른 것은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인물로 나타나게 된다.

현장에서의 삶에서 도망치려 하는 요원, 상부에 보다 가시적인 실적을 보고하기를 원하는 상관, 비현실적인 임무 수행을 꺼려하는 동료 요원 등의 모습은 보통의 영화에서 겁쟁이(coward)라는 의미보다는 오히려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각주:2].

 

하지만 마침내 그녀의 목적이 달성되는 순간, 그곳에는 환희도 없었고, 함성도 없었다.

그녀는 사냥감이 제대로 잡혔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했을 뿐,

그것을 통해 얻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러한 장면은 "허트 로커"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 주인공은 자신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 마지막 한 건은 완수하지 못하기는 했으나 - 이라크 현장에서 떠나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나, 고향에서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전쟁터로 되돌아 갈 수 밖에 없었던, 그리고 현장에서는 당당한 걸음걸이로 걸을 수 있었던 주인공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제로 다크 서티"에서도 주인공 마야가 자신이 끈질기게 뒤쫒았던 사냥감을 잡게 된 이후, 그녀의 표정과 눈물에서 삶의 목표의 상실감을 읽을 수 있다.

 

 

 

 

 

"허트 로커"에서도 총격이 난무하는 현장을 그렸다기보다는 상대적으로 후방에서 발생하는 폭탄 테러에 대한 일을 다루기는 했지만서도.. 이 영화는 "허트 로커"보다는 영화의 소재 상 전쟁의 현장을 직접 다룬다기 보다는 CIA 요원들의 조사, 수색 현장들에 초점을 두고 있다.

때문에 "허트 로커"에 비해서는 현장감이 다소 떨어진다고 생각될 수 있으나, 오히려 이 작품에서는 CIA 요원들의 모습을 보다 현실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직접적인 총격이나 폭발 등의 장면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기는 하지만 영화 내내 하나의 주제를 뒤쫒는 인물을 집중적으로 일관적으로 조명하면서 추적 현장에서의 모습을 실감나게 담고 있다.

또, 서두에 밝힌 것처럼, 카메라는 화면에서 나타나는 사건들을 객관적인 태도로 담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 편집 역시 주요 사건을 일대기 형식으로 다루면서 주요 사건이 발생한 시각과 장소, 그리고 키워드를 영화 중간중간 자막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이와 같은 카메라의 객관성은 마치 내가 극영화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것과 같은 기분을 들게 하는데, 영화 속의 사건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가 허구인지 분간이 안 되고, 모두가 사실처럼 느껴지는 듯한, 그런 인상을 전해주고 있다.

 

 

이 영화의 백미는 막판에 등장하는 현실적인 액션 시퀀스이다.

(자꾸 "허트 로커"를 들먹이는데..) "허트 로커"에서도 가장 놀라웠던 연출력이 이 점이였다. 마치 내가 실제 전쟁터 현장에 나와 있는 것 같은 현장감, 그리고 그 긴박감과 긴장감.

비글로우의 전쟁 영화에서는 화려한 폭죽놀이도, 무차별한 총격도 존재하지 않는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Saving Private Ryan, 1998)"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의 총격전은 내가 마치 살육이 자행되고 있는 총격전 현장을 종군기자의 시선에서 보고 있는 것 같은 입체적인 사실감을 전해줬다면, 비글로우의 영화에서의 총격은 마치 카메라가 전투요원의 일부인 것 같은 시선을 따라가고 있다.

빈 라덴의 근거지를 침투하여 암살하는 작전인 만큼 결력한 총격전은 없지만, 격발하는 총탄 소리 하나하나와 터지는 폭발물의 음향은 어느 전쟁영화보다도 사실적이면서 현실적이다.

 

 

 

 

 

아쉬운 점도 있다.

이 글에서 자꾸만 그녀의 전작 "허트 로커"와 비교하고 있는 것처럼 영화를 보는 내내 "허트 로커"와 비교하게 되었는데, 이 영화의 가장 큰 약점은 그녀의 전작 "허트 로커"라는 것이다.

비글로우의 영화를 처음 접한 것이 "허트 로커"였고, 이것은 내게 있어서 매우 충격적인 영화였는데, 지금도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볼 때에 영화가 모두 끝나고 스탭롤이 올라가는 순간 내가 온 몸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는 깨닫고 또 그때까지 온 몸에 힘을 잔뜩 주고 보느라 그때서야 긴장이 풀리면서 몸의 피로가 느껴졌다는 사실이 기억난다.

그만큼 큰 인상을 남겼던 지라 "제로 다크 서티"에 대한 기대감도 컸으며, 이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허트 로커의 감독의 작품"이라는 색안경을 벗을 수 없었다.

군인이 생사를 두고 싸우는 현장에 비하면 CIA 요원의 현장은 소재자체로는 '상대적으로' 그 긴장감이 덜 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 CIA 요원도 목숨을 걸고 싸우기는 하지만, 괜히 그런 기분이 들기는 했다 - 주요 사건들 역시 주인공이 직접 겪는 일보다는 주인공의 동료 요원들이나 군인들이 겪는 사건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탓이기도 했으나, 영화에 대한 몰입도는 다소 떨어졌던 것은 사실이다.

(극장에 조금 늦게 들어가서 오프닝을 놓친 것도 몰입도에 큰 영향을 주기는 했다.)

때문에 이 작품만을 보면 뛰어난 집중도를 지닌 작품이기는 했지만, (자꾸 전작이랑 비교해서 미안한데) 전작에 비해서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 많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들이 여럿 있는데,

차량 폭발 테러 장면, 호텔 폭탄 테러 장면, 그리고 앞서 밝힌 침투 작전 액션 장면이다.

세 장면 모두 음향효과 및 연출의 힘을 입어 사건의 현장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장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 영화를 이만큼 잘 만드는 여성 감독은 전세계 어딜 가도 없을 것 같다.
아니 "여성"이라는 수식어를 빼도, 전쟁 영화를 이만큼 잘 만드는 감독은 없을 것이다.

 

 

* The copyright of the included images from the motion picture "Zero Dark Thirty" is reserved in Columbia Pictures Industries, Inc..

 

 

 


제로 다크 서티 (2013)

Zero Dark Thirty 
8.9
감독
캐서린 비글로우
출연
제시카 차스테인, 제이슨 클라크, 크리스 프랫, 조엘 에저튼, 카일 챈들러
정보
액션, 드라마 | 미국 | 157 분 | 2013-03-07

  1. obsession을 정확히 표현할 만한 우리 말이 떠오르지 않아 일단은 사전적인 의미로의 망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음 [본문으로]
  2. 영화에서 CIA 고위인사는 이러한 자신들의 부하들은 coward라고 지칭하며, 대조적으로 주인공 마야를 이 일에 제격의 인물로 치켜 세우기도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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