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23 21:53

과장의 미학.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2014)




0.


"세상에 무슨 영화 제목이 이렇고, 무슨 영화 포스터가 이래?"


내가 관람할 영화를 고르는데 있어, 사전에 미리 얻는 정보는 감독, 캐스팅, 포스터 정도 뿐이다.

심지어 시놉시스나 예고편조차 거의 보지 않는다.

때문에 이 포스터만 보고서 당연히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는데, (관람희망 지수 1 상승)

감독이 웨즈 앤더슨이라고 한다. 이름은 잘 모르겠는데, 알고보니 작년에 보고 싶었지만 결국은 보지 못한 영화 <문라이즈 킹덤>의 감독. (관람희망 지수 2 상승)


그런데 캐스팅이...



아니 무슨 이런 캐스팅이 다 있다냐... (관람희망 지수 5 상승)


게다가 우연히 몇몇 스틸컷을 접했다. (다음은 그 몇장 중 하나.)


헉. 이 미쟝센은... (관람희망 지수 폭발!!!!!!) 무조건 봐야 한다...!!!!






1.


해서 보게 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이 영화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내가 영화를 좀 봤다, 혹은 스스로 영화를 좀 볼 줄 안다 싶은 사람이라면 무조건 봐야 할 영화이다.


플롯이면 플롯, 미쟝센이면 미쟝센.. 촬영, 편집, 음악, 미술, 그리고 명배우들의 연기와 대사 하나하나 버릴 게 전혀 없는 명작이다.

웨즈 앤더슨의 영화를 처음 본 것이지만, 이 영화 하나로 그의 팬이 되었다.




2.


플롯은 시놉시스에서 읽을 수 있는 그 내용으로부터 시작한다.

등장인물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경영하고 있는 구스타프(랄프 파인즈 분), 그리고 어느 날부터 그 호텔에서 로비보이로 일하게 된 제로 (토리 레볼로리 분).

마담 D(틸다 스윈튼 분)는 정기적으로 이 호텔을 방문하는 투숙객으로 엄청난 갑부, 그런데 사실 그녀는 구스타프와의 연인 관계.

84세의 할머니 마담 D는 어느 날 시체로 발견되는데, 이 소식을 들은 구스타프는 자신의 충실한 직원인 제로를 대동하여 마담 D의 장례식장으로 향하고, 이 때부터 마담 D의 재산 상속을 둘러 싸고 그녀의 아들 드미트리(애드리언 브로디 분)의 암투가 시작된다.


기본적으로 미스테리물의 플롯을 가지고 있는 이 영화는 스릴러물이나 탐정물처럼 조마조마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게 아니라, 이야기 하나하나를 코믹한 과장의 방법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여기서 한번 생각해 볼 것이, 누구든 자신의 (소위) "무용담"을 남에게 이야기한다 치면, 그 이야기에는 언제가 "과장"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대한민국 남성들이 군대 얘기를 듣고 있자면, 간첩을 때려 잡은 사람들은 대체 몇이며, 전투축구 때는 얼마나 으뜸가는 스트라이커였는지.. (이 얘기에는 과장도 과장이지만 거짓말이 많이 들어가 있다는 게 함정)


영화는 어떤 소녀가 책을 읽는 것에서 시작, (액자 1)

그 책의 작가는 책 안에서 자신이 젊었던 시절에 전해 들었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액자 2)

그 작가가 젊었을 시절, 한 때 머물렀던, 유럽의 낡고 퇴물이 되어 버린 호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이 호텔의 경영인인 노인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액자 3)

이 영화의 주 스토리는 이 노인이 어린 시절에 로비보이로 일할 때 겪었던 옛날 얘기. 

근데 그 얘기를 듣고 있자니 완전 제대로 무용담이다.


(이미 액자가 많이 등장했는데) 다시 정리해 보면, 작가가 젊었을 때 어떤 노인에게서 어린 시절의 무용담을 들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가 나이 들어서 책(소설)으로 쓴 것이다.

자. 이 정도로 몇 사람을 걸쳐서, 몇십 년이라는 시간을 걸쳐서 이야기가 전해졌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이 영화의 스토리에서 얼마만큼이 진짜이고, 얼마만큼 부풀어졌으며, 얼마만큼 왜곡되었고, 얼마만큼 뻥인지 알 길이 없다.


그렇다. 이 영화의 주 스토리는 이렇게 과장으로 부풀어진 뻥튀기 스토리다. 이미 여기서 이 영화는 코미디이고 환타지라는 것을 밝혀 주고 있다.





3. 



제로가 어린 시절 로비 보이로 일하던 1920년대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의 호화 호텔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믿을 수 없는 게, 노인 제로가 살고 있던 시대의 호텔과 어렸을 때의 호텔의 로비는 같은 호텔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너무 공간의 차이가 심하다.... 

거 어렸을 때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운동장은 엄청난 넓이였던 것 같이..


아무튼 구스타프라는 인물은 분명히 그 호텔의 지배인이었고, 제로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주었던 사실임은 틀림이 없다. 그리고 마담 D의 상속문제에도 분명히 얽혀 있었다. 

여기까지는 별 무리없이 상황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코믹한 스토리인데, 구스타프가 용의자로 몰리는 순간부터 과장의 미학이 제대로 시작된다. (여기부터는 제로 역시 자신이 겪은 일이 아니라 구스타프가 후에 해 준 이야기를 전해 들은 것이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또 얼마나 많이 과장/왜곡이 되었을까)


<더 보기: 스포일러 포함>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는 과장의 미학의 최고봉은 구스타프가 제로와 함께 경험하는 설원 여행이다.

호텔 컨시어지 조합의 도움을 얻어, 사라진 집사의 행방을 찾아 알프스 산맥과 같은 산 속에 묻혀 있는 수도원으로 향하는 여정이나, 드리트리의 하수인 조플링(윌렘 대포 분)과 쫒고 쫒기는 장면은... 아악...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그 장면을 생각만 해도 너무 웃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4. 


이렇게 과장에 과장을 겹친 스토리를 재미지게 구성하는 데에는 미술과 미쟝센, 카메라의 힘이 컸다.

일단 이 영화의 예고편에서 캡쳐해 온 장면들을 잠시 보자.











이 영화는 지독스러울 만큼 색채를 고려한 세트를 구성하고,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1.33:1 비율의 화면에 꽉차는 장면장면을 구성하고 있다.

매 시퀀스 하나하나가 정교하게 계산된 색상과 구도를 담은 카메라는 답답해 보일 수도 있는 1.33:1 비율의 화면을 오히려 관객의 시선을 한 곳에 집중시킬 수 있는 장치로 활용하였다. 이 좁은 화면 안에서 감독은 모든 인물과 사물, 배경을 완벽하게 배치하고 있었는데, 감독에게 지독한 결벽증이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원샷으로 인물을 담을 때에도 아주 당당히 화면 중앙에 인물을 배치하고 (사진 찍을 때 모두가 피하는 방법), 좌우 대칭을 왜 이리 좋아하는지.... 심지어 양 쪽 벽에 하나씩 부딪히는 두 주인공의 모습도 교차편집으로 좌우 대칭을 만들어 버리는..

이렇게 모든 장면에 미쟝센을 고려하여 촬영한 감독은 그 카메라 워크 마저 사랑스럽게 만드는데...

정말 쓸 데 없는 이동 장면이라고 하더라고, 영화의 고전 문법을 지켜가면서, 카메라의 패닝과 수평 돌리를 반복적으로 활용하여 인물의 움직임을 원경에서 하나하나 묘사하고 있다.


또 세트 제작 등의 미술은 미쟝센을 담기 위해 최고로 발휘되었는데, 굳이 어떻다고 더 말하지 않고 위 스틸샷만 보아도 충분히 설명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영화 크레딧을 보다 보니 미니어쳐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촬영도 함께 이뤄졌던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전경이나, 저 눈 덮힌 산골짜기 등의 장면은 모두 미니어쳐로 제작되어 촬영된 장면으로, 알 수 없는 나라에 와 있는 것과 같은 환상적이고 예쁜 장면 연출하는 데 일조했다. 

또 동계 올림픽 (?) 씬과 같은 장면들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듯 싶다.


이러한 미술 표현 방법은 영화에서 표현하고 있는 과장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고, 나아가서 배경과 사건 자체를 현실감이 없는 환타지의 세계로 만들어 버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5.


촬영과 미쟝센에 대한 얘기를 적다 보니 이 영화에서 빼 먹을 수 없는 게 중요한 게 하나 있는데, 바로 화면비이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1.85:1 비율의 와이드스크린으로 상영이 된다. 근데 1.85:1 비율의 화면이 제대로 스크린에 꽉 차게 나오는 장면은 영화사 로고와 오프닝 장면 밖에 없다.... -_-

이후 영화는 1.33:1, 1.85:1, 2.35:1의 비율을 시시 때때로 바꾸면서 상영이 되는 화면비 총집합 영화인다.. @_@


화면비의 비밀은 영화의 액자 구성과 관련이 있다.

액자 1은 1.85:1 풀스크린, 액자 2는 1.85:1 레터박스(상하좌우의 검은 여백), 액자 3은 2.35:1, 주 스토리는 1.33:1로 화면비가 구성되어 있다. (액자 1은 영화 전후로 매우 짧게 지나가서 기억이 확실치 않다. 엔딩 장면에서는 1.85:1 레터박스였던 것 같기도 해서 헷갈리는..)


각각의 액자가 다른 화면비를 가지면서 이야기 속의 이야기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1.85:1 레터박스 부분이 매우 재미있는데, 보통 극장의 1.85:1 스크린을 완전히 채워서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일부러 액자가 있는 것처럼 레터박스로 처리했다는 얘기다.

다음 장면을 참고하면 이해가 빠를 듯.



그림 출처: 익스트림무비 '우루사'님 글 [각주:1]



이 영화의 화면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위 그림의 출처인 익스트림무비 게시글을 살펴 보면 더욱 도움이 될 듯 하다. 매우 흥미로운 글이라 링크를 함께 남긴다. 


또, 이동진 평론가가 화면비와 각 사건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 설명한 것도 있는데, 이 글[각주:2]도 함께 참고해 봐도 좋을 것 같다. 





6.


이 영화를 보면서 엄청난 캐스팅의 명배우들을 안 짚고 넘어갈 수 없다.

사실 저 위의 포스터에 들어간 인물들을 모두 알지는 못 하고 내가 아는 배우들은 틸다 스윈튼, 애드리언 브로디, 윌렘 데포, 에드워드 노튼, 빌 머레이, 주드 로, 오웬 윌슨, 레아 세이두 정도인데... (이 정도만 해도 많군.. ㄷㄷ)

주역들 빼 놓고는 이 배우들 중의 대부분은 단역 내지는 까메오 수준이라는 것;;

근데 그 각각의 장면에서 이 배우들이 나오는 게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다.

빌 머레이와 레아 세이두, 오웬 윌슨이 정말 거의 역할이 없다시피 한 배역들인데,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를 보자.

보통의 좋은 영화라고 인정받는 극영화들은 배우들의 사실적이고 흡입력있는 연기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완전 반대의 위치에 있다. 오히려 이 영화는 연극을 보는 것과 같은 연기, 또 의도적으로 절제되고 인위적으로 짜여져 있는 연기라는 인상이다. 

배우들은 모두 이 영화를 구성하기 위해 배치되어 있는 캐릭터의 역할만을 할 뿐이다.

웨더슨 감독의 다른 작품을 보지는 못했으나, 이러한 연기가 웨더슨 감독의 특징 중에 하나라고 한다. 관객이 실화극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아닌, 가상의 배경에서 이뤄지고 있는 인위적인 사건을 화면을 통해 "관람"하고 있다는 느낌을 전해 주기 위한 의도라고 한다. [각주:3]

이렇게 짜여진 듯한 연기가 이 극의 코믹성을 더 하고 있는 요소라고 생각되며, 여러 번 반복되는 장면(컨시어지들의 전화 장면, 두 주인공이 기차 안에서 군인들과 상대하는 장면 등)에서 그 코믹한 효과가 더욱 잘 드러나고 있었다.




7.


글이 점점 길어지고 있는데,,,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얘기는 음악이다.

좋은 영화의 공통점은 음악이 참 좋다는 건데, 이 영화 역시 음악이 일품이다.

동유럽의 한 미지국가에 동화처럼 펼쳐져 있는 공간에 어울리는 동유럽 풍의 신비로운 음악이 기본 테마는 유지한 채 각 장면에 맞게 변주를 진행하며 러닝타임 내내 울려 퍼진다.


엔딩 크레딧에는 러시안 음악이 나오면서 화면에 조그마한 캐릭터가 하나 나와 춤을 추는데, 상당히 귀여우니 엔딩롤을 모두 보고 있어도 그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2014)

The Grand Budapest Hotel 
8.3
감독
웨스 앤더슨
출연
랄프 파인즈, 틸다 스윈튼, 토니 레볼로리, 시얼샤 로넌, 애드리언 브로디
정보
미스터리, 어드벤처 | 미국, 독일 | 100 분 | 2014-03-20
글쓴이 평점  


  1. 익스트림 무비: http://www.extmovie.com/xe/bestpost/3994213 [본문으로]
  2. 이동진 평론가 블로그 http://blog.naver.com/lifeisntcool/130187774173 [본문으로]
  3. 어느 리뷰에서 본 내용인데,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안 난다....;; [본문으로]
블로그 글이 맘에 드시면 추천이나 댓글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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