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04 00:14

벼락치기 간사이 여행 12: 철학의 길 ~ 호넨인

- 지난 이야기 - 
킨카쿠지의 닮은 꼴 긴카쿠지. 방금 킨카쿠지에서부터 와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재미없는 재방송을 본 것 같기도 하고 왠지 조금은 답답한 듯한 느낌이었다.  



#1. 오늘의 일정 재점검




최초의 계획은 참 대단했다.
아니 오히려 무모했다고나 해야 할까.
단 하루만에 니조조, 킨카쿠지, 긴카쿠지 그리고 철학의 길을 거쳐 호넨인, 헤이안진구, 기요미즈데라와 주변의 절, 그리고 저녁은 기온에서 먹을 생각을 했다니 말이다.

지도만 봐도 답이 안 나오는 일정이었다.

첫 방문지였던 니조조에서 예상보다 1시간을 더 소모하면서 어그러지기 시작한 계획은,
긴카쿠지를 보고 내려오는 순간 이미 말이 안 되는 계획이 되어 버렸다.

사실 내가 언급한 모든 곳을 가 볼 욕심은 없었다.
특히 철학의 길을 따라가면서 볼 수 있는 많은 절들은 이번에는 포기해야 할 것들이었다.
그래도 헤이안진구(平安神宮) 정도는 볼 수 있을 꺼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오후 3시가 넘어 버렸다.

긴카쿠지(銀閣寺)에서 도보로 5분 정도면 갈 수 있다는 호넨인(法然寺)는 오후 4시에 닫기에 큰 무리는 없으나,
헤이안진구는 5시 반, 고다이지(高台寺)는 5시, 그리고 꼭 가 봐야 할 기요미즈데라(淸水寺)는 오후 6시에 문을 닫는다.

이제 이쯤이면 일정을 재점검할 수 밖에 없다.
호넨인은 여기서 가까우니 빨리 보고 이동하면 된다. 기요미즈데라에 갈 생각을 하면, 헤이안진구보다는 거리가 가까운 고다이지부터 가자. 그리고 기요미즈데라에 들어가는 거야.
어찌되었든 문닫을 때가 되어야 다 보고 나올 수 있는 아슬아슬한 코스가 되어 버렸다.

이거 꼭 무슨 포스퀘어 스팟 찍는 게 목표가 되어 버린 것 같은 기분이다... -_-



#2. 철학의 길

긴카쿠지 앞 긴카쿠지바시(銀閣寺橋)에서 시작하여 작은 수로를 따라 호넨인, 안라쿠지(安樂寺), 오토요진자(大豊神社), 조쇼인(聴松院), 난젠지(南禅寺)를 잇는 조그마한 길이 있는데, 이 길을 철학의 길(哲学の道; 데쓰가쿠노미치)이라고 부른다.
이 길은 교토대학의 교수이자 철학가였던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가 산책했던 길이라고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시간이 많으면 이 길을 따라가면서 주변에 있는 절과 신사를 하나씩 들러보고, 뭔가 여유로운 사색(?)의 시간을 가져볼 텐데, 나는 시간에 쫒기는 관광객에 지나지치 않았기에 이런 여유는 사치가 되어 버렸다.

철학의 길 안내판. 
메이지 23년, 블라블라 쓰여 있는 안내판. 중간중간 써 있는 한자 빼 놓고는 까막눈이오..


긴카쿠지바시 옆에 놓여 있는 안내판에는 내가 다음 목적지로 삼은 호넨지와 다른 장소들의 이정표가 놓여 있었다.

좁은 개울과 나무, 작은 풀들. 그리고 허술한 보도.
이것이 내가 본 철학의 길의 첫 인상이었다.




한 여름의 날씨가 그런지, 꽃이나 단풍이 하나도 없어서 그런지,
7월의 철학의 길은 방문객이 걷기에는 그리 좋은 길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나무가 계속해서 연결되어 있어 그늘도 있고, 중간중간 쉬어가며 걷기에는 나쁘지 않은 길이였다.

더워서 그런 건지, 아니면 본래 이 길을 찾는 사람이 적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길을 걷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니, 나 혼자거나 아니면 지나치는 한두명 정도가 전부였다.




그래도 중간중간 예쁘게 꾸민 찻집이나 음식점들이 하나씩 있었다.
예전에는 고즈넉한 길이었던 삼청동에 방문객이 많아지면서 온갖 가게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기게 되어 이제는 옛 정취를 느낄 수 없는 것과는 달리 이 길에는 아직 고요와 평온이 깔려 있었다.



#3. 호넨인, 그 호젓함.

생각보다 많이 걸었다.
10분여를 걸었는데, 호넨인이 보이지 않는다.
혹시 지나친 건 아닐까. 난 얼마나 온 걸까.
아이폰의 지도를 켰는데 이 놈의 GPS가 다른 곳을 찍고 있다.

제대로 온 건지 자신이 없어 한 가게에서 쉬고 있는 일본인 청년에게 길을 물었다.
그 역시 여기 처음 와 본 듯 하다. 자신도 그리 자신은 없어 보였다.
다만 아직 호넨인은 조금 더 가야한다는 것과 거의 다 왔다는 사실은 나에게 자신있게 얘기해 주었다.
조금 갸웃했지만, 그 청년의 말대로 곧 호넨인의 이정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도보 3분. 다 왔구나.
언덕길을 걸어 올랐다.
또 다른 이정표.



200 미터.
근데 왜 4분으로 시간이 늘었냐... -_- 장난하냐
생각해보니 이정표에서 다음 이정표까지 3분 걸어 온 것 같다. -_-




이제 정말 다 왔다. 
수풀 사이로 많은 계단이 보였다.
보기만 해도 시원했다.



계단을 올라 문을 통과하는 -- 너무 조용한 절이라 -- 살짝 오싹한 기분이 들기도 했으나
숲이 주는 시원함에 곧 마음을 놓았다.




산몬(総門)은 꼭 초가집처럼 생겼는데, 지붕에는 작은 풀과 이끼들이 나 있었다.
지금까지 봤던 일본 사찰들의 화려함과 기교와는 달리 소박함이 느껴졌다.
(입장료도 없다)


내부에는 조그마하게 모래로 정원을 꾸며 놓았으나, 소박하다고나 갈까...
어떻게 보면 조금 어색해 보이는 정원이지만, 인공적인 느낌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자연스러운 모습이였다.





이 절에서 유일하게 공개되고 있는 건물이다.
그나마도 이렇게 입구 밖에서만 관람이 가능하다.
건물 안에는 그림 한 점이 놓여 있다. 



이 방 왼쪽에는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쓰여져 있다.
가이드 북에 의하면 1년에 2회 (봄에 한 번, 가을에 한 번) 일반에 공개된다고 하는데 그 정보는 나와 있지 않다.


이 절에는 석탑도 하나 있다.




일본에 와서 처음 보는 석탑이었다. 
10층 석탑의 기단부에는 돌아가며 불상을 조각해 두었고, 1층과 2층에는 네 면에 각각 불상이 또 조각되어 있다.


절 안 쪽의 정원. 깨끗하게 정돈된 정원은 아니었으나 마음의 평온을 주는 공간이었다.




땀도 식힐 겸 잠시 계단에 앉아 목도 축이고, 기운을 차리고자 어제 편의점에서 산 메이지 초콜렛을 하나 꺼냈다. (http://gp.pe.kr/75 참조)

헐.
날씨가 더워서 어느 정도 녹을 껄 예상은 했지만, 초콜렛이 완전히 녹아 버렸다.먹을 수 없을 만큼.
종이 봉투를 열어 하나만 혀로 대충 핥아 먹고 물티슈로 손을 닦고 그냥 나머지는 가방에 도로 넣었다.
이걸 어떻게 먹어.


절의 한 건물에서는 도자기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아마 도자기의 한 장인이 만든 것들을 전시하면서 판매도 하는 것 같다.
손가락만한 간장종지 만한 게 거의 만엔이다.
작년에 캄보디아에서 그만한 종지 2개에 1달라 주고 샀는데. 
뭐 작품의 아름다움이나 질 정도는 물론 비교할 꺼리는 서로 안 되기는 하지만, 1만 5천엔만 들고 온 여행객한테는 말도 안 되는 소리지. ㅎㅎ


산몬을 다시 통과하여 이번에는 산몬 바로 옆에 놓여 있는 내리막 길로 내려왔다.
아...



멋진 대나무 숲이다..


잠시 뭔가 조용하고 아늑한 곳을 들렀다가 떠나는 기분이었다.
이내 피곤한 발걸음도 가벼워지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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