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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펜하이머’와 과학기술 정책 #1. 과학기술 정책의 시작

인터스텔라와 테넷에서 물리학을 영화적으로 그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라면, 핵폭탄 개발 책임자였던 J.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다룬 영화 '오펜하이머'는 당연히 양자역학과 핵물리학으로 범벅된 이과생 영화일 줄 알았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니, 감독은 오히려 과학과 정치, 과학과 윤리, 이데올로기와 메카시즘을 주로 다루었고, 이건 오히려 문과생 영화였다.
 

 

영화 '오펜하이머' 10가지 단상

8월 16일 저녁, 상영시각 한 시간 전 취케팅으로 구한 용아맥 명당석(I-20)에서 관람 1. 영화가 시작하는 순간부터 화면과 음악으로 바로 몰입. 3시간이라는 러닝 타임이 무색한 흡인력. 2. 교차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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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하에서 핵폭탄을 개발하기 위해 시작된 '맨해튼 프로젝트'.
이 포스트에서는 이에 얽힌 과학과 정치, 과학기술 정책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1.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의 시작


2차 대전이 발발할 무렵 물리학자들이 발견한 핵분열 연쇄반응(fission chain reactions)이 전쟁에 가공할 무기로 활용될 가능성이 대두되었다. 핵분열에 대한 기초 이론을 정립한 바 있는 레오 실라드르(Leo Szilard, 1898-1964)는 평화주의자인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을 설득하여 루즈벨트 美 대통령에게 서신을 보내게 하였다.
 

아인슈타인과 실라드르 (출처: DOE)


우여곡절은 있었으나 결론적으로 미 행정부는 이를 계기로 독일보다 먼저 핵폭탄을 개발하여 전쟁을 종식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우게 되었고, 이를 이루기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가 비밀리에 시작되었다. 
 
프로젝트 이름은 맨해튼인 반면, 이 프로젝트는 뉴욕 맨해튼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주요 거점은 시카고, 오크리지, 핸포드, 로스 앨러모스이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주요 거점 (출처: DOE)


시카고에서는 아서 콤프턴(Arthur Compton, 1892-1962)이 이끄는 Met Lab이 원자로 제작, 플루토늄 분리 등 핵분열 연쇄반응에 대한 실험을 주도하였다. 오크리지에서는 우라늄 농축, 핸포드에서는 플루토늄 정제 및 생산을 진행하였고, 로스 앨러모스는 최종적인 핵폭탄의 설계와 제작을 담당하는 총괄적인 업무를 수행했는데, 이 연구소의 책임자가 오펜하이머이다.
시카고를 제외한 세 곳의 거점은 모두 이 프로젝트를 위해 새로 건설한 기지이자 도시였다.

효율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많은 과학자들이 한 곳에 모여야 할 필요가 제기되었는데, 시카고와 로스 앨러모스에는 집단연구를 위한 연구단지를 형성하였다. 다만, 연구단지는 완전히 하나로 집중화하지는 못하였는데, 시카고 대학교에 이미 갖추어진 실험용 원자로를 이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시카고를 하나의 거점으로 삼아 프린스턴 대학교와 컬럼비아 대학교의 연구자들이 모이게 되었다.
또한,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또 다른 연구자 그룹은 UC 버클리를 거점에 두고 있었는데, 대규모 제작 및 실험을 위한 부지 확보와 보안 목적으로 허허벌판인 뉴멕시코 로스 앨러모스에 새롭게 대규모 연구단지를 건설하였다. 
연구자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로스 앨러모스에는 연구자의 가족도 모두 거주할 수 있도록 주택과 정주여건을 마련했고, 가족과 지역민들을 직원으로 고용하기도 하였다. 물론 처음부터 정주여건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혁신도시 초창기처럼 열악한 환경에 연구자들과 가족들은 큰 불만을 나타냈다. 프로젝트가 본격화되며 업무의 증가로 인한 채용 증가와 함께 지속적인 환경 개선이 이뤄지면서 1943년 1월 1500명이었던 로스 앨러모스의 인구는 1945년 8200명까지 늘어나게 된다.
 
네 거점과 버클리의 연구소들은 미국 국립연구소(National Lab)의 원형으로, 각 도시에는 지금도 국립연구소들이 운영되고 있다.
- 시카고 대학교의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 1901-1954)가 개발한 원자로를 계승한 Argonne National Lab
- 핸포드 사이트의 연구기능에서 비롯된 Pacific Northwest National Lab
- 오크리지와 로스 앨러모스의 연구소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Oak Ridge National Lab과 Los Alamos National Lab
- UC 버클리의 어니스트 로렌스(Ernest Lawrence, 1901-1958)의 연구소에서 비롯된 Lawrence Berkley National Lab
특히 핸포드, 오크리지, 로스 낼러모스 모델은 연구단지 신규 건설을 통한 집적화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2. 과학기술 정책의 시작


맨해튼 프로젝트는 과학의 본질을 새롭게 정의한 매우 중대한 사건이었다. 
 
맨해튼 프로젝트 이전의 과학은 대학 중심의 자유로운 연구 활동이었다. 
과학 자체가 ‘목적’이었으며, 학자들 간의 자연스러운 교류와 소통을 통해 과학의 발전이 이뤄지고 있었다. 
 
반면, 맨해튼 프로젝트는 정부의 필요로 인해 설계된 최초의 과학 프로젝트로, 과학은 ‘목적(임무)’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작용했다. 
목적 달성을 위해 정부 조직, 예산이 생겨났고, 과학자들을 한 곳에 모아 집단연구를 가능케 하는 국립연구소와 연구단지를 만들었다. 연구 보안의 개념도 처음으로 등장했으며, 연구자들은 군사 임무에 준하여 통제되었다.
과학과 정치의 첫 만남으로, ‘과학기술 정책’의 시작이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배경에는 정부 조직의 형성이 함께 한다.
핵폭탄의 개발이라는 목적 하에 1940년에 미 행정부 내에 국방연구위원회(NDRC, National Defense Research Committee)가 최초로 설치되었다. 국방연구위원회는 이후 과학연구개발국(OSRD, Office of Scientific Research and Development)로 확대되어 맨해튼 프로젝트를 본격 착수하였고, 이 조직은 현재의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OSTP, Office of Science and Technology Policy)로 이어지며 미국의 과학기술 정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 참고자료 >
1. U.S. Department of Energy, The Manhattan Project: An Interactive History
2. 정욱식, 2차 세계대전과 히틀러의 핵보유가 만날 때, 프레시안 (2012.01.19)
3.  카이 버드, 마틴 셔윈,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최형섭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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